내 선택은 내것인가?

선택을 40년 넘게 하다보니 이게 내것인지 잘 모르겠다. ㅋㅋ

살다보니

77년생 김대정

tonyjjin 2024. 7. 16. 18:17

 

77년생 김대정은 박정희각하가 아직도 살아있던 그 시절에 전라남도 광주에서 태어났어요.

부모님은 ‘식당을 하면 자식은 굶기지는 않겠지?' 라는 생각으로 식당을 했어요.

 

 

 

 

4살이 되던해 쿠데타를 일으키고 신군부의 대가리가 된 전대가리가

광주사람들을 학살하기 시작했어요.

부모님은 날아드는 실탄에 혹시 맞을까 봐 두꺼운 솜이불로 저를 감싸고 집밖으로 나가지도 못하고

숨어 있기만 했어요.

 

 

 

 

국민학생(초등학교)이 된 김대정은 학교가 즐거운 곳인 줄 알고 손수건을 가슴에 달고

누런 코를 휘날리며 입학을 했죠.

그때부터 고등학교 졸업까지 12년동안 선생님들이 헌신적인

사랑의 주먹과 사랑의 매로 가르침을 주실지 몰랐어요.

얼마나 사랑을 주셨는지 고3 담임선생은 학생에게 따뜻한 칼침도 배에 맞아 주셨죠.

 

 

김대정은 그다지 공부를 못한게 아니였는지 경기도권 어느 공대에 95학번으로 들어갔어요.

지금에야 후회를 약간 하지만 그때 광주의 국립대에 수의학과를 포기하고

겉멋만 들어 나는 서울 갈거야! 하고 올라간 게 멍청하긴 했어요.

 

 

 

그 대학을 선택한게 95년도에 한국 4대 재벌이라고 하는 현대, 삼성, LG 그리고 ‘대우’였어요

그 대우가 소유한 대학이였죠.

졸업만 하면 대기업에 쉽게 들어갈 수 있었기에 합격한 모든 대학을 포기하고 들어갔죠.

 

 

 

 

 

대학생활은 정말 멋졌어요.

우린 X세대였죠.

모두들 너무 멋있었어요. 남들과 같은 건 죽어도 싫었나 봐요.

너무 개성 있고 당차고 자신감 강하고.. 서태지와 아이들이 활동하던 시기여서

무려 학교 대운동장에서 서태지와 아이들을 5미터 앞에서 맨눈으로 볼 수 있었죠.

거기다 안정환이 94학번 선배였죠.

김대정은 좋았어요. 정말 좋았어요. 군대를 가기 전까진.

 

 

 

 

의경을 지원했는데 당연하게도 광주에 배치를 받았어요.

대모를 막았죠.

눈앞에서 화염병과 돌과 쇠파이프를 쉴세 없이 맞아댔어요.

오른손에 화염병이 터지는 바람에 오른손 검지살점이 반 이상 떨어져 나가 지문인식이 안돼요.

오월대, 녹두대라고 대학들에 있던 대모부대가 있는데

한 번은 기습을 받아 부대원들 반은 병원에 실려갔죠.

불구가 된 사람도 있고 죽은 사람도 있고 김대정은 무릎에 쇠파이프를 맞았는데

제대로 된 치료도 못 받아서 무릎이 안 좋아요.

그나마 다행이에요. 살아있으니까

제대할쯤에 김대중 대통령이 당선이 되었어요.

그 뒤로 대모가 줄었어요.

 

 

 

 

그렇게 제대를 했는데..

IMF라는 게 빵 터져서 현실이 되어 있었죠.

그런데.. 그 4대 재벌이라는 대우가 망해버렸네요.

그 대학을 가려고 다 포기했는데…아..

부모님은 식당 문을 닫았어요. 망한 거죠.

 

 

김대정은 졸업해도 갈대가 없어서 졸업 전부터 사업을 시작했어요.

이제 막 싸이월드, 프리챌, 다모임, 아이러브스쿨 같은 게 나오던 시절이었어요.

김대정도 그런 IT회사의 임원이 될 줄 알았어요.

바야흐로 닷컴의 시대…는 염병

닷컴버블이 터지고 다 망했어요.

그때 코스닥지수를 현재 환산하면 2834예요. 얼마나 올라가서 망했는지 감도 안 오죠.

 

 

 

 

김대정은 대출에 사체에 카드 돌려 막기에 온갖 방법을 써보았어요.

사회초년생이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었어요.

그런 상황에도 옆을 지켜주던 여자와

그런 상황에서 결혼식을 올렸어요.

 

 

 

마이너스의 삶에서 플러스까지 가기 위해 열심히 살았어요.

첫째를 낳고 너무 행복했어요.

더 열심히 일했어요.

회사를 출근하고 퇴근하면 다시 야간알바를 하고 주말에 주말알바를 하고

그러다 사업할 때 빌려준 아이디로 아이템거래가 되었던 게

국세청에서 갑자기 세금 1억 5천이 떨어졌어요.

김대정은 한강 물온도가 어느 정도 일까 생각해 봤어요.

추울까 봐 포기하고 다시 열심히 살았어요.

 

 

 

김대정은 신을 믿지 않아요.

하지만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조금 행복해지면, 나중에 얼마나 큰 시련을 줄려고 지금 행복을 주는가..

 

 

 

둘째가 태어났어요.

김대정은 이제 뒤를 보지 않고 살기 시작했어요.

이미 지난 것에 대한 후회 원망은 손절하고 앞만 보고 달렸어요.

 

 

 

 

그러다 마흔이 되었어요.

김대정은 태어나서 처음으로 가족과 해외여행을 가보았어요.

김대정은 잊을 수 없는 그때 기억으로 지금까지 살고 있어요.

그때부터 모든 것이 잘 되었어요.

다시 회사를 차리고 사업을 하고

사옥이 생기고 열심히 일을 하고 운동을 해요.

 

 

 

곧 첫째가 대학 입학을 위해 집을 떠나요.

김대정은 잠시 95년도에 마냥 즐겁기만 한 그때를 떠올려요.

그 뒤로 너무 많은 파도를 탔지만

뒤 돌아보면 다시 하고 싶진 않아요.

지금이 좋아요.

 

 

 

 

 

역시 돈이  조크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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