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때 지구가 기울어져 태양주위를 돈다고 하더라
그래서 4계절이 생기고 여름이 온다고.. 그렇다. 그 염병할 여름!
94년도 폭염은 정말 상상하기도 싫다.
5월부터 30도가 넘더니.. 6월을 넘어 7월까지 가파르게 상승해서 대프리카는 39.4도를 찍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 시절에 에어컨이 있었을 리가 없지.
게다가 고등학교에는 흔한 선풍기조차 없었던. 실로 강한 자만 살아남던 시절이었다.
남고인 우리 학교는 빤스만 입고 책상을 가장 시원한 곳을 찾아 이동해 가며
진짜 구슬땀을 흘리며 공부하는 진풍경이 펼쳐졌다.
공부하다 갑자기 창문밖으로 뛰어내려도 옆친구를 샤프로 찍어도
어.. 그렇수 있지!! 하며 납득이 될만한 하루하루가 지나갔지만
우리에겐 겨우 6개월 밖에 남지 않았기에
그저 견딜 수밖에..
그때쯤 난 슬럼프였다.
지방국립대 정도는 가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3학년을 올라 모의고사를 보는 순간 알았다.
"아.. 나는 전문대(지금은 사라진 2년제 기술대학)도 못 가겠구나."
거의 포기 직전에 이를 때쯤에 수학문제를 하나 푸는데.. 풀리지가 않았다.
30분을 넘게 푸는데도 풀리지가 않자 나 자신이 정말 초라해져 갔다.
"아.. 이거 하나도 못 푸는구나 난."
그때 있지도 않은 오기가 생겼던 거 같다. "이거 못 풀면 나는 그냥 다 포기하련다." 하며 모든 수업을 듣지도 않고
아무것도 쳐다보지도 않고 1박 2일 동안 답이 나올 때까지 풀고 또 풀었다.
그렇게 안 풀리던 문제가 자고 일어나서 다음날 아침에 같은 문제를 계속 푸는데
도저히 생각지도 못한 방법으로 풀이가 이어지더니..
답이 나왔다!!
내 답이 정말 맞을까?
슈퍼 프리미엄팩 랜덤박스 쪼이는 기분으로 답안지를 여는 순간!
답이 맞았다!
어?! 그런데 풀이과정이 틀리다. 뭐지? 그냥 답만 맞은 건가?
그 뒤로 나는 풀이과정을 몇 번이고 반복해 봤다.
그때 깨우친 게 있다.
아!! 풀이과정이 하나가 아니구나..
그때였던 거 같다. 주입식 교육으로 단단할 때로 단단해진 돌덩이 같은 내 뇌가 깨어지는 순간이.
수많은 선생님들과 수학과 교수들이 집필했을 그 문제의 해답에 이르는 과정이 단순히 하나가 아니라는
아주 간단한 이치를 그제서야 알게 된 것 같다.
(이 부분이 내 인생의 첫 번째 터닝포인트다.)
94년 역대 최고의 폭염이라는 그 여름 한가운데서..
이제 수능은 6개월도 안 남은 그 시점에..
나는 공부가 재밌어져 버렸던 거 같다.
부모님도 선생님도 학원강사도 누구도 가르쳐주지 못한 진짜 공부하는 방법을 알게 된 그 시점에
그저 좋은 대학을 가야겠다는 생각은 내 머릿속에서 잊혀지고
그저 나에게 다가오는 수많은 문제들이 게임 퀘스트 같아졌다.
이건 이렇게 하면 되는 건가?
아니 이렇게도 되지 않을까?
다르게 생각하면 이런 의미를 가지지 않을까?
매일매일 퀘스트를 클리어한다는 생각으로 하루하루가 지나고 가을이 겨울이 되어..
수능날이 되었다.
고사장을 엄마의 웃음 어린 인사를 뒤로하고 들어와 앉았다.
시간이 흐른다.
내 인생 최초로 내 인생을 스스로 결정할 기회를 만드는 시간이 흐른다.
국어시험이 시작되자 시험 감독관이 창문을 열고 담배를 피운다. (그땐 그랬음 ㅋ)
담배냄새가 코로 들어오자 왠지 모르게 내 집에서 시험을 보는 기분마저 든다.
시험이 끝났다.
12년을 공부한 결과라기엔 허무한 시험이 끝나고
고사장을 엄마의 눈물 어린 인사로 껴안으며 나왔다.
입시원서를 넣은 모든 대학에 합격했다.
물론, 6개월 동안 미친 듯이 공부했다고 SKY를 갈 실력이 되는 건 아니나
합격한 전남대 수의학과를 포기하고 "난 서울로 갈꺼야!!" 하고 올라갔다.
(솔직히 6개월만 나에게 더 주어졌다면.. 하고 생각 들었지만 재수는 하기 싫었다 ㅋ)
나도 대학생이구나.. 아.... 싸! 아싸다..ㅋㅋ
95학번 그땐 X세대라고 불리는 그쯤이었던 거 같다.
지방에서 상경한 촌놈은 모든 것이 신기했었다.
길을 걸어 다니는 모든 사람들이 너무도 자유로워 보였다.
머리를 무지개색으로 물들이고 다니는 사람들 여기저기 구멍을 뚷고 피어싱을 한 사람들
남자인지 여자인지 모를 사람들
찢어진 청바지와 바닥을 쓸고 다니는 청바지를 입고 다니는 사람들
당당하게 길에서 담배 피우는 여자들
그런 사람들이 모여 잔디밭에서 기타를 치며 노래하고
서태지 노래를 틀고 춤을 추며
김광석 노래를 부르고
책을 읽고
그림을 그리고
낭만이었다.
나도 그 낭만세상에 들어가고 싶었다.
동아리를 가입하고 친구를 사귀고 태어나서 처음 보는 거리를 걸어 다녀보고
이렇게나 큰 레코드가게가 우리나라에 있는지 처음 보았고
이렇게 넓은 전자상가가 있다는 거에 소름 돋았으며
밤새도록 사람이 넘처나는 시장과 쇼핑몰에 취해버렸다.
정말로 놀라운 것은 그렇게 놀기만 하는 친구들이 공부도 잘한다는 것이었다.
와... C 이건 반칙이지!
그렇게 잘 노는데 언제 리포트를 다 써왔지? 발표준비는 또 언제 한 거야?
그때 또 알게 된 것이 있다.
자기 할 일 잘하는 놈들이 놀기도 잘 노는구나..
(반대로 잘! 노는 놈들이 공부도 잘하드라)
롤모델
당시엔 그런 단어조차 없던 시절에
나에게 롤모델이란 단어에 정확하게 부합하는 사람을 만났다.
4학년 형이었는데 전자공학과 기계공학과 복수전공을 하면서 학점 평균이 4.2였다.
와.. 미친 건가?
잠 안 자고 공부만 하나??!!! 으잉? 그런데..
기숙사에서 매일 같이 고스톱(내 돈 정말 많이 가져감ㅠ)을 치고 술 마시러 나가고
노래도 잘 불러서 축제 때 밴드를 결성해서 대상도 타고
게다가 운동도 잘해..
대체 그걸 다 어떻게 잘하는 거지?
(그 형은 졸업 후 아마 삼성반도체 연구소에 들어갔던 거 같다)
나도 그처럼 되고 싶어서 열심히 따라 해 봤다.
수업을 최대한 집중해서 듣고 들으면서 바로 노트에 요약정리를 하며
과제가 나오면 바로 레포트 쓸 서적들을 준비하고 발표준비를 하고 셤준비를 하고
잠을 쪼개고 시간을 쪼개가며
도서관과 동아리와 술집을 오가며..
MT를 가고 여행을 가고
짝사랑하는 그녀에게 고백하다 차이고.. 찌질하게 또 술을 마시고
좋아하는 만화도 그리고 당구도 치고 볼링도 치고 탁구도 쳐가며..
2학년 중간고사 기간이었던가..
일주일을 밤을 새워본적이 있다. 정확히는 30분정도의 쪽잠을 하루에 몇번씩 걸쳐서 자면서
밤을 세워 공부했다. 잠이 와서 도서관 옆 커피자판기에 하루에 11번이나 인사한 적이 있다.
모든 셤이 다 끝나고 지하 자취방에 저녁 7시에 들어가서
옷도 갈아입지 않은 채 기절했다.
눈을 떠보니 저녁 8시 반이다.
"어? 별로 안 잤는데 너무 개운한데?"
배가 정말 너무 고파서 근처 음식점에서 정신없이 밥을 먹다 느낌이 이상해서
티비에서 흘러나오는 뉴스를 보다 보니..
응?? 어?
하루가 지났네??
25시간을 안 먹었으니 배가 고플 수밖에..
"아.. 진짜 기절했던 거구나 젠장"
(다음부턴 안 그런다.. 그러다 심정지 오면 그냥 고독사다.)
영화 부당거래에서 류승범이 그랬던가..
"야... 열심히들 산다 증말 열심히들 살어..."
누군가에겐 한없이 낮은 자들의 퍼덕거림이겠지만
나의 20대는 후회 한 점이 없을 정도로 열심히 살았던 기억밖에 없다.
IMF가 터졌거등
캬~!!!
헬조선의 근본! I! M! F!
나라의 경제가 금융이 산업이 한순간에 개같이 멸망해 버렸다.
열심히 안 살 수가 없지 ㅋㅋ
내가 다니던 대학을 지원하던 대기업이 망해버렸다.
아... 졸업만 하면 그 대기업에 갈 수 있었는데 ㅠㅠ
별수 있나. 그저 알아서 절벽을 기어오를 수밖에..
그 사이에 우리 부모님도 가게가 망해버렸다.
3학년이 되었을 때 깊은 고민에 빠졌다.
졸업하면 먹고살 수 있을까?
그저 부모님의 인생을 갈아서 살아온 내가 스스로를 먹여 살릴 수 있을까?
다음 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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